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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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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희 기자]
귀한 기록을 읽었다. 재일조선인 고 김찬정이 쓴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다. 저자는 1962년 여름 오사카 이카이노를 방문했다, 이곳에 물씬 배어있는 조선스러움에 충격을 받는다.
재일조선인이면서도 재일조선인의 삶에 무지했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 때문이었을 테다. 이후 이카이노 재일조선인의 삶을 추적해 펴낸 역작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지 40년 만인 지난해 이마고 출판사가 펴냈다. 뜻깊다.
릴게임한국
▲ 책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 표지
ⓒ IMAGO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이카이노는 일본 오사카의 한 지역으로 재일조선인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다. 집단 거주의 기원을 궁금해하던 저자는 두 가지 설을 조사한다. 유력하게 지목된 설은 '히라노 운하 정주설'로, 1920년대 히라노 운하 건설 인부로 건너온 많은 조선인이 정주하게 되었다는 설이다.
하지만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이카이노에 정착해 산 지 오래된 재일조선인의 주장은 달랐다. 히라노 운하 건설이 있기 전부터 조선인이 살고 있었으며, 히라노 운하 인부들은 기숙사 같은 곳에서 함께 지내다 운하 건설의 종료와 함께 떠났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일본 공적 기록 등을 추적한 결과, 히라노 운하 건설 이전 이미 재일조선인이 이카이노에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릴게임사이트추천 사실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왜 모여들었을까.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카이노는 제주도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제주도인들은 왜 집단으로 이카이노에 모여들었을까. 당시 제주도는 면화를 재배해 방적하는 가내수공업이 유력 산업이었는데, 기계화된 일본 방적의 값싼 면포가 들어오면서 산업이 붕괴되었다. 어업 또한 릴게임5만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근대 어업 방식이 제주 어장을 황폐화시키면서 먹고 살 길이 막힌 것이다.
반면 제조업 활황을 맞은 일본은 저임금 인력이 부족해지자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제주도로 모집인을 보냈다. 이렇게 호구지책이 막막했던 제주도인과 노동력이 부족했던 일본 산업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많은 제주도인이 일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주도민 집단 도항의 또 다른 주요한 촉매는 1922년 제주 오사카 간 정기항로의 개설이다. 저렴해진 선박요금과 짧아진 승선 시간은 오사카(이카이노)로의 이주를 촉진했다. 5만이 넘는 제주도민이 도항했는데,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25%일 정도로 큰 규모였다.
한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갑자기 모여들었으니 거주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가난했던 조선인들은 대부분 하숙집에 기거했는데, 하숙인 1호당 14인이 거주할 정도로 열악했다. 주로 메리야스, 유리, 고무 산업 등의 소규모 제조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임금은 '기아 임금'이라 불릴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장시간 노동 착취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었다.
식민지 시기 어디라고 살아가는 일이 수월하겠는가마는,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로 삶은 더욱 팍팍했다. 조선인에게 집을 임대하지 않으려는 일본인에게서 세를 얻으려면, 일본인의 보증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1년 이상 근무한 증명서가 있어야 했지만, 이를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했다.
일본인인 척해서 세를 얻어도 발각되면 즉각 퇴거 요구를 받는 등 이런저런 문제로 셋집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었다. 재일조선인의 험난한 이주 살이는 지금 한국 이주민들의 현실과 겹쳐진다. 일본이 필요해서 조선인을 고용했고, 이들의 값싼 노동력이 없었다면 일본의 경제는 물론 일본인의 생활도 쉬이 돌아가지 않을 것인데도,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지독했다.
어딜 가나 '개와 조선인 거절'이라는 문구가 버젓이 붙어 있었다. 내선일체는 허구였고,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하대와 무시가 일상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늘어난 이카이노의 조선인들은 삶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를 시작했다.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노동자 계급성을 자각한다. 1922년 기시와다 방적 회사의 조선인 여공 271명은 차별 대우 개선을 요구하는 첫 쟁의를 일으킨다. 이후 일 전역에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조선인 노동자 운동이 번지는데, 쟁의의 중심엔 늘 여공이 있었다.
1925년 재일조선노동총동맹이 창립된 이래 오사카 노동조합은 1만7천의 조합원을 확보하며 힘을 결집한다. 심각한 차별로 말미암은 주택 임대 문제에 '셋집 쟁의'로 대응하면서 많은 개선을 이루어냈고, 제주도를 오가는 선박의 비싼 요금 문제에 직면해 조합 차원에서 선박을 임대해 자주적으로 운항하는 '동아통항조합' 투쟁에 돌입한다. 피식민지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인이 쟁취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차별이 일상인 곳에서 이룬 혁혁한 공적 성과뿐 아니라 조선인으로 먹고 입고 살아간 흔적의 추적도 흥미롭다. 저자의 노고를 통해 접한 재일조선인들의 생활상은 그간 여러 콘텐츠를 통해 분절되어 있던 재일조선인에 대한 정보를 통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를테면 넷플릭스 드라마 <파친코>에서 주인공 '선자'가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벌겋게 버무린 김치를 장에 내와 갖은 용기를 내 '김치 사이소'하던 그 시장통이 이 책이 소개하는 이카이노 조선인 시장의 한 귀퉁이겠구나 상상하게 되는 절묘한 조합 말이다.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저자가 자세히 다룬 이카이노 여공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의 삶은 '애사(哀史)'로 불릴 정도로 애처롭고 신산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노동쟁의를 감행하는 강한 동력과 결집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일깨워 준다. 이들이 일하고 싸웠던 노동 현장이 책이 소개한 이카이노 곳곳에 있었다.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도 이카이노에 살았던 재일조선인의 가슴 아픈 서사다. 제주 4.3을 피해 도항한 이가 바로 양 감독의 어머니인데,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들들을 북조선에 보내고 회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식민시기와 4.3 그리고 전쟁의 휘몰아치는 역사 속에 재일조선인이라는 아린 존재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강하게 환기된 책 서아귀의 <할머니들의 야간 중학교>도 언급하고 싶다. 1920년대 이카이노에 노동운동으로 각성한 재일조선인들은 '사설 야학교'를 열었다. 문맹이 많았던 조선인들에게 굴욕감을 씻고 자긍심을 북돋기 위해 조선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연 것이다.
일본이 이를 두고 볼 리 없었다. 야학이 민족주의를 고취시킨다는 명분으로 혹독히 탄압해 해산되기까지, 조선인들 특히 배움의 열망이 컸던 어린 소녀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야간 학교에서 글을 배웠다.
이러한 야학의 명맥은 1973년 이카이노 다이헤지 구민회관에서 열린 첫 수업으로 이어졌다. 야학의 해산 명령으로 배움의 기회를 잃었던 1세대 재일조선인 '할머니'들이 '우리 서당'을 발족시켜 배움을 이어나갔다. 이들의 공부 투쟁은 일본의 민족 차별에 딴지를 거는 동시에 "학교 다니는 하루하루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행위"였다. 1920년대 이카이노 야학교의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어 배우고 싸워 나갔다.
<이카이노 이야기>는 1920년대부터 오사카 이카이노에 살았던 재일조선인의 삶을 고증해 구체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재일조선인의 기원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 그들의 삶을 살피게 만든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내며 "조선인 문제는 또한 일본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뿐 아니라 재일조선인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에도 울리는 바가 크다.
귀한 기록을 읽었다. 재일조선인 고 김찬정이 쓴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다. 저자는 1962년 여름 오사카 이카이노를 방문했다, 이곳에 물씬 배어있는 조선스러움에 충격을 받는다.
재일조선인이면서도 재일조선인의 삶에 무지했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 때문이었을 테다. 이후 이카이노 재일조선인의 삶을 추적해 펴낸 역작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지 40년 만인 지난해 이마고 출판사가 펴냈다.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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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이카이노에 정착해 산 지 오래된 재일조선인의 주장은 달랐다. 히라노 운하 건설이 있기 전부터 조선인이 살고 있었으며, 히라노 운하 인부들은 기숙사 같은 곳에서 함께 지내다 운하 건설의 종료와 함께 떠났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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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카이노는 제주도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제주도인들은 왜 집단으로 이카이노에 모여들었을까. 당시 제주도는 면화를 재배해 방적하는 가내수공업이 유력 산업이었는데, 기계화된 일본 방적의 값싼 면포가 들어오면서 산업이 붕괴되었다. 어업 또한 릴게임5만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근대 어업 방식이 제주 어장을 황폐화시키면서 먹고 살 길이 막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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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인 척해서 세를 얻어도 발각되면 즉각 퇴거 요구를 받는 등 이런저런 문제로 셋집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었다. 재일조선인의 험난한 이주 살이는 지금 한국 이주민들의 현실과 겹쳐진다. 일본이 필요해서 조선인을 고용했고, 이들의 값싼 노동력이 없었다면 일본의 경제는 물론 일본인의 생활도 쉬이 돌아가지 않을 것인데도,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지독했다.
어딜 가나 '개와 조선인 거절'이라는 문구가 버젓이 붙어 있었다. 내선일체는 허구였고,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하대와 무시가 일상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늘어난 이카이노의 조선인들은 삶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를 시작했다.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노동자 계급성을 자각한다. 1922년 기시와다 방적 회사의 조선인 여공 271명은 차별 대우 개선을 요구하는 첫 쟁의를 일으킨다. 이후 일 전역에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조선인 노동자 운동이 번지는데, 쟁의의 중심엔 늘 여공이 있었다.
1925년 재일조선노동총동맹이 창립된 이래 오사카 노동조합은 1만7천의 조합원을 확보하며 힘을 결집한다. 심각한 차별로 말미암은 주택 임대 문제에 '셋집 쟁의'로 대응하면서 많은 개선을 이루어냈고, 제주도를 오가는 선박의 비싼 요금 문제에 직면해 조합 차원에서 선박을 임대해 자주적으로 운항하는 '동아통항조합' 투쟁에 돌입한다. 피식민지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인이 쟁취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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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도 이카이노에 살았던 재일조선인의 가슴 아픈 서사다. 제주 4.3을 피해 도항한 이가 바로 양 감독의 어머니인데,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들들을 북조선에 보내고 회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식민시기와 4.3 그리고 전쟁의 휘몰아치는 역사 속에 재일조선인이라는 아린 존재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강하게 환기된 책 서아귀의 <할머니들의 야간 중학교>도 언급하고 싶다. 1920년대 이카이노에 노동운동으로 각성한 재일조선인들은 '사설 야학교'를 열었다. 문맹이 많았던 조선인들에게 굴욕감을 씻고 자긍심을 북돋기 위해 조선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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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야학의 명맥은 1973년 이카이노 다이헤지 구민회관에서 열린 첫 수업으로 이어졌다. 야학의 해산 명령으로 배움의 기회를 잃었던 1세대 재일조선인 '할머니'들이 '우리 서당'을 발족시켜 배움을 이어나갔다. 이들의 공부 투쟁은 일본의 민족 차별에 딴지를 거는 동시에 "학교 다니는 하루하루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행위"였다. 1920년대 이카이노 야학교의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어 배우고 싸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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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펴내며 "조선인 문제는 또한 일본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뿐 아니라 재일조선인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에도 울리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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